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혜경궁 홍씨 (문단 편집) == 여담 == * 베스트셀러가 된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에서 혜경궁 홍씨의 추존 시호를 "경의왕후"로 '''잘못''' 적어버리는 바람에 그 잘못된 시호가 공공기관과 개인 홈페이지를 안 가리고 여기저기로 퍼져버리고 말았다. 혜경궁 홍씨는 "헌경"+"의"+"황후"='''헌경의황후'''로 추존되었기 때문에 "헌경의황후", 줄여서 "헌경황후", "의황후"로 부르는 것이 맞으며, 굳이 조선시대의 작위인 "왕후"로 부르겠다면 아주 정확하지는 않지만 "헌경왕후"로 부르는 것이 맞다. 헌경의황후를 "경의왕후"로 부르면 "명성태황후"를 '''"성태왕후"'''로 부르는 것과 같다. 해당 도서가 출간된지 25년이 지났음에도 곳곳에서 아직도 그런 오류가 발견된다. [[http://www.kyeonggi.com/1521609|예시 1]], [[https://www.emuseum.go.kr/detail?relicId=PS0100100101600546800000|예시 2]], [[https://www.culture.go.kr/knowledge/encyclopediaView.do?vvm_seq=8171|예시 3]], [[https://www.mcst.go.kr/kor/s_culture/festival/festivalView.jsp?pSeq=462|예시 4]][* 예시 2와 3, 4는 공공기관 홈페이지임에도 틀린 시호를 당당하게 적어놨다.(...)] * [[정조(조선)|정조]] 대의 문신 이재 황윤석이 쓴 《[[이재난고]]》에 혜경궁 홍씨는 아버지 [[홍봉한]]의 청지기의 딸 '[[의빈 성씨|성덕임]]'을 [[궁녀]]로 거두어 친히 길렀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비]]들은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어린 [[궁녀]]를 친딸처럼 기르기도 했는데, 혜경궁 홍씨는 [[의빈 성씨|덕임]]과 비슷한 나이의 자녀([[정조(조선)|정조]], [[청연군주]], [[청선군주]])가 총 셋이 있었다. * [[정조(조선)|정조]]는 어머니가 기르는 [[궁녀]]인 [[의빈 성씨|성덕임]]에게 첫눈에 반해 [[왕세손|세손]]이었던 [[1766년|15살 소년시절]]에 고백했으나 사양했고, 15년 후에 [[1781년|30살]] 청년군주가 되어 고백했으나 또 사양했다고 한다. [[정조(조선)|정조]]가 [[의빈 성씨|덕임]]의 사속[* 私贖, [[궁녀]]가 개인적으로 부리는 하인, 무수리 등을 지칭함.]을 책벌[* 責罰, 저지른 과오에 대하여 이를 뉘우치고 반성하고 반복하지 않도록 징계하기 위하여 벌을 줌.]한 연후에야 비로소 스스로 [[성관계|승은]]할 [[후궁|마음]]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사속을 책벌할 정도면 혜경궁의 귀에도 들어갔을 텐데, 혜경궁은 아들을 2번이나 찬 [[의빈 성씨|덕임]]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듯, [[출산]]할 때 [[풍산 홍씨|친정]]에서 데려온 [[노비|몸종]]과 [[유모]]를 보내 돕는 등 아들 [[정조(조선)|정조]]의 [[문효세자|자식]]과 [[의빈 성씨|덕임]]을 지극히 챙겨줬다고 한다. * 이 '덕임'이라는 [[궁녀]]가 바로 [[정조(조선)|정조]]의 [[후궁]] [[의빈 성씨]]이다. 즉, 혜경궁은 자신이 딸처럼 키운 [[궁녀]]를 [[며느리]]로 맞이하게 된 셈. 또한, [[의빈 성씨]]는 [[궁녀]] 시절 혜경궁의 딸들인 [[청연공주]], [[청선공주]]와 함께 소설 《[[곽장양문록]]》을 필사하기도 하는 등 밀접한 사이였다. * [[정조(조선)|정조]] 즉위 이후, [[사도세자]]가 [[임오화변|죄인 신분으로 요절했던 탓]]에 [[정조(조선)|왕]]의 [[어머니|친모]]이기는 했지만 [[효순왕후|대비]]나 [[효의왕후|중전]]의 예도, [[세자빈]]의 예도 들기 뭣해 [[하늘색|천청색]] 치적의를 입었다고 한다. * [[2007년]] 권두환 교수는 [[사도세자]]가 장인 [[홍봉한]]에게 보낸 친필 [[편지]]를 발견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5&oid=055&aid=0000100738|해당 편지 내용]]을 보면 [[사도세자]]가 [[우울증]] 때문에 [[약]]을 부탁했다고 나온다. 원문을 [[번역]]한 내용은 이렇다. >열은 높고 '''울증은 극도에 달해 답답하다'''. '''우울증을 씻어내는 약을 남몰래 보내 달라'''([[1753년]] 또는 [[1754년]] 모월(某月) 모일(某日).)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79&aid=0000167062|#]] * [[2014년]] [[울산대학교 의과대학]]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의사 정하은과 김창윤이 《[[한중록]]》을 분석했다. 그 내용이 [[정신병]] 증상에 맞으며 모르는 사람이 서술했다기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해당 서술이 현대의 정신 의학적 지식을 가진게 아니라면 허구로 기록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 참고로 이와 같이 [[역사학자]]들도 자기가 모르는 분야는 관련 전문가들에게 의뢰하기도 한다. >《[[한중록]]》은 [[사도세자]]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던 [[풍산 홍씨|친정 홍씨 집안]]을 방어하기 위해 혜경궁 홍씨가 [[사도세자]] 사후에 기록한 것이므로 내용이 [[왜곡]]되었을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사도세자]]는 [[붕당 정치|당쟁]]에 의해 희생된 것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 [[이덕일|Lee DI]]. The world dreamed by Prince Sado. Goyang: Wisdomhouse;2011. p.53-54. ) 하지만 《[[한중록]]》의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신병]]적 증상에 들어맞는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정신 증상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이 순전히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술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접근 가능한 역사적 자료의 양이 부족하여 자료 수집에 제약이 많았고, 이로 인해 근거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이연구의 가장 큰 제한점이다. 또한, 연구자가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1차 자료에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중록]]》을 살펴보면 증상에 대한 기술이 상당히 상세하고 구체적이어서, 현대의 정신 의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허구로 기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https://pdfs.semanticscholar.org/5b47/ae0ec3c51c0d7dcfe7866bd9ed869efed944.pdf|해당 논문기사]] * [[2019년]] 6월, [[청선공주]]의 남편 정재화(鄭在和) 후손이 [[수원화성]]박물관에 기증한 유물중에 [[조선/왕실|왕실]]에서 주고받은 [[한글]] 편지가 대량 나왔다. 그 중에 대부분이 혜경궁과 그의 외손자인 정의(鄭漪)가 주고 받은 편지들인데, 혜경궁이 정의에게 보낸게 77통, 정의가 외할머니에게 보낸게 55통이나 된다. [[http://www.incheonilb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27895|#]] >하루 사이 잘 지내느냐? >오늘은 네 생일이니 어느새 열살을 넘었으니 어른이 다 된듯 다행하기 이를것 없다. >오직 너를 위하여 축원하기는, 무병장수하고 학문이 진취하고 덕행이 탁월하여 금옥의 견고함과 큰선비의 이름을 얻어, >입신성취에 남부끄럽지 아니하여 칭송하는 소리가 네 어미의 귀에 들려 효도를 이루어 착한 아들을 낳은 어진 어머니의 이름을 네 어미에게 들리게 하고 모자가 백세 장수하여 어머니는 아들을 의지하여 온갖 복을 받고 아들은 어머니를 우러러 지극한 효도로 공양하여 >태평안락에 자손이 면면히 이어져 [[정철|정 송강]] 가문을 일으켜 세운다고 하니 기쁘다 >오늘날 너를 생각하고 축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여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네가 태어나던 시간에 앉아 이 편지를 쓰니 늙은 외조모의 지극한 축원을 네 몸에 간직하여라. >섭섭하여 면포 1필, 명주1필, 솜5근 보낸다. 솜은 꽃이니 네 몸에 입어 만복이 오게 하려는 덕담이고 필묵과 편지지가 가니 갈수록 글잘하고 대나무 그릇에 담아주니 대나무는 군자의 높은 절개로 비기니 그처럼 높고 굳은 사람이 되어라 >찬합 탕 한그릇 보내니 즉시 먹고 국수는 길게 장수하라는 뜻으로 먹게 보내니 즉시 먹어라. >할미가 말 많은 것을 웃어라. * 혜경궁의 친필 한시[[http://www.k-heritage.tv/brd/board/256/L/CATEGORY/615/menu/254?brdCodeField=CATEGORY&brdCodeValue=615&bbIdx=5716&brdType=R&tab=|#]]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